서태지 자서전 9. 신대철과의 만남

Posted by RAY.D
2015. 2. 6. 21:23 뮤지션 이야기/국내




이중산씨가 하루는 나를 부르더니 신중현씨가 운영하는 록 카페 '우드 스토크'에 가서 기타를 한번 쳐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이중산씨는 평소 내 기타 치는 솜씨를 유심히 봤던 것 같다. 나는 과연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해 뒷날 '우드 스토크'로 찾아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말하자면 오디션을 본 셈이었다. 내깐에 실력을 좀 내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신나게 기타를 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청년이 다가오더니 대뜸 '나하고 그룹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유심히 쳐다보니 인기그룹 '시나위'의 멤버였던 신대철 선배였다. 나는 꼭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로선 우리들의 절대 우상이던 신대철 선배가 나에게 함께 일해볼 것을 권유하다니.... 내가 신대철 선배를 만난 당시엔 '시나위'의 멤버들의 인기는 정상의 솔로가수를 능가했다. '시나위'의 멤버들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TV나 콘서트장에 나타나면 장내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시나위는 3집까지 내는 동안 '새가 되어가리' '크게 라디오를 켜고'등을 빅히트 시켰으며 요즘 한창 인기가 높은 손무현 김종서 임재범등 많은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신대철 형이 '너 같은 멤버만 들어와 준다면 시나위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며 꼭 함께 일하자고 거듭 부탁했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그곳에 모였던 이중산 신중현 신대철형등은 내 기타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들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어디서 저렇게 기타를 배웠을까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내가 누구에게 배운 일 없이 독학했다고 말하자 다시 한번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신대철형과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나는 곧바로 시나위 재건 작업에 들어갔다. 이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이처럼 맨날 음악에 묻혀 살다보니 학교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2학년 말쯤엔 그 동안 상위권에 머물던 성적이 중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당시 친구들 사이엔 미팅이 대유행이었는데 나에게도 미팅을 하자는 주문이 수없이 많이 들어왔다. 곱상한 얼굴에 노래를 한다니 놀기 좋아하는 날라리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때 난 미팅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실제로 음악에 미쳐 시간이 없었을 뿐 아니라 모르는 여학생과 마주 앉는 일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