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자서전 10. 그리운 얼굴

Posted by RAY.D
2015. 2. 7. 05:03 뮤지션 이야기/국내





그렇다고 전혀 이성교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꼭 한번 그리운 얼굴이 있었다. 2학년 때 학교로 오가는 길에서 자주 눈길이 마주친 여학생이 있었다. 긴 머리에 눈이 큰 그 여학생은 어쩌다 나하고 마주치면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얼른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얼굴이 물감을 들인 듯 빨개졌다. 그 여학생과는 이상할 정도로 자주 마주쳤다. 나중엔 등교 길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 허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몇 달이 가도 전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갈 무렵 난 친구를 따라 서울대학병원에 병문안을 가게 됐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와 늘 길에서 마주치던 여학생이 창백한 모습으로 그곳에 누워있었다. 장서희란 이름을 가진 그 여학생은 알고보니 친구의 친척동생이었다. 악성 빈혈로 2개월째 입원하고 있다고 했다. 아 그랬었구나. 나는 유난히 창백해 보였던 그녀의 얼굴을 뒤늦게야 기억해냈다. 서희는 한눈에 날 알아봤다. 그리고 상상외로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서희는 내가 친척오빠의 친구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서희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난 틈만 나면 병원을 찾아갔다. 서희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가기도 하고 서희가 좋아하는 음악을 기타로 연주해 주기도 했다. 서희는 음악감상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내가 치는 기타소리를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서희가 퇴원하고 학교에 복학한 후에도 우린 종종 만나 음악도 듣고 빵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웠다. 서희는 주로 듣는 편에 속했는데 내 이야기에 대해 다른 견해가 있을 땐 꼭 깨알같은 글씨로 편지도 써보냈다. 그렇게 조금씩 정을 키워가고 있을 무렵, 부피가 두툼한 편지 한통이 내게 배달됐다. 얼른 봐도 서희의 편지가 분명했다. 편지는 뜻밖에도 몇 달 후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게 됐다는 슬픈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섬유계통의 사업을 하는 부모님을 따라 가고 싶지 않지만 떠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나고 말았다. 난 그녀의 편지를 받던 날 집안에 틀어박혀 미친 사람처럼 기타만 쳐 댔다. 꼬박 하루를 굶고 다시 한 끼니를 걸렀다. 난 열흘이 넘게 열병을 앓고 난 후 다시 바깥출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렇게 자학적인 모습이 돼 있는지 가족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또 다시 고집스런 괴벽이 발동한 것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린 그 뒤에 아무 소식도 주고 받지 않았다. 얼마전 서희가 다시 대학을 다니러 한국에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 다시 서희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의 추억은 아련한 슬픔으로만 마음 한곳에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서희와의 상처를 비교적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서희와 헤어진 때가 마침 내가 시나위에 들어갈 때여서 열병에서 빨리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