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자서전 4. 하늘벽
이 글은 서태지가 21살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후 스포츠 서울의 지면을 빌어 자신의 자라온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난 기타연주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드럼 키보드 보컬 등을 끌어들여 5인조 그룹 '하늘 벽'을 만들었다. '하늘벽'은 언젠가 내가 설악산에 갔을 때 발견한 지명이었다. 나는 당시 이 이름을 발견하고 너무 마음에 들어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고 마음에 새겨두었던 것이다. 막상 그룹은 만들었지만 연습할 곳도 악보도 없었다. 연습은 비교적 음악에 관한 너그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 때문에 우리집에서 할 수 있었지만 악보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좋아한 노래가 있으면 테이프를 구해다 자신이 맡은 악기를 즉석에서 채보해 연주를 했다. 자칫하면 불협화음이 될 수도 있었지만 너무 성심껏 해 생각이상으로 잘 됐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음악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과학을 공부하는 일보다 물건을 만드는 일보다 오히려 기타를 만지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이들이 취미 삼아 음악을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뒷날 이것이 직업이 될 줄 알았으면 이때부터 말리셨을 것이다. 비록 친구들 앞에 멋진 연주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당시 '하늘벽'의 인기는 대단했다. 근처의 여학생들까지 '하늘벽' 멤버라고 하면 알아줄 정도였으니까. 우리들의 꿈은 친구들이 빽빽하게 운집한 무대에서 신나게 공연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늘벽'은 해체될 때까지 꼭 한번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학교 강당에 각 학교에서 모인 친구 선후배 1천여명을 모아놓고 공연을 했는데 너무 신이나 음악이 끝난 다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내가 음악에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을 보자 음악을 하려면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해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마음이 음악쪽으로 돌아서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난 오히려 음악을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의 경우 아티스트들이 15,16살에 데뷔해 20살이 되면 절정에 이르고 25,26살이 되면 노장 대접을 받는 일이 많은데 우리 나라에도 이 같은 현상이 곧 오리라고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노래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미래는 일본 미국이 아닐까 하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든 개의치 않고 음악에만 열중했다. 심지어 기타가 너무 좋아 잘 때도 꼭 껴안고 자기도 했다. 내가 음악에 관해 자질이 있다고 맨 처음 느낀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테이프를 들으면 악기 채보를 할 때 난 친구들이 마저 듣지 못하는 음까지 잡아냈다. 누나는 나의 이런 재질을 발견하곤 정말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칭찬해줬다. 누나와 난 어려서부터 피아노 공부를 해 음악적으로 통하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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