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자서전 3.기타를 치기 시작했던 때

Posted by RAY.D
2014. 11. 9. 00:45 뮤지션 이야기/국내

이 글은 서태지가 21살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후 스포츠 서울의 지면을 빌어 자신의 자라온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3.

난 국민학교 상급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목소리가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한번은 쉬는 시간에 노래 부르기를 햇는데 이 때 내 목소리가 제일 높이 올라갔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난 곧 교내 합창 반에 뽑히게 됐다. 이때도 난 내가 장차 가수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오직 건축설계사나 아버지같은 발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아버지는 내 취미가 발명쪽에 있는 것을 알고는 직접 도와주기도 하고 자신이 하는 연구에 참여시켜주기도 했다. 난 친구도 폭넓게 사귀는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대신 고두식이란 단짝 친구와 이야기를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국민학교때의 유일한 친구인 고두식과는 그렇게 친하게 지냈지만 졸업 후엔 뿔뿔이 흩어져 아직까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대동 중학에 입학했다. 교복이 따러 없어 중학교에 올라온 특별한 기분은 없었지만 무언가 어른이 된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었다. 국민학교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선 과목별 선호도가 유난히 심했는데 특히 수학과목을 아무리 취미를 붙여보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원래 숫자를 싫어한데다 앞으로 수리를 바탕으로한 직업을 갖지 않겠다는 생각때문에 더욱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당시의 내 생각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만 정확히 하면 나머지는 필요없을 것 같았다. 이 때문인지 난 지금도 수리에 그렇게 밝지 못하다. 고스톱을 칠 때도 유난히 계산이 느리다는 지적을 많이 받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계산이 복잡해지면 지금도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온다. 반면 과학시간엔 괜히 신이 났다. 과학에 관한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신이 났다. 당시만 해도 친구들 사이엔 여학생들과 미팅이 유행했는데 난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때문에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미팅에 다녀온 친구들이 옆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땐 마치 딴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내가 이처럼 미팅에 무관심한 것은 이성에 관해 유난히 눈을 늦게 뜬 탓이기도 하다. 키나 몸은 또래들과 비슷했지만 이성에 관한 호기심은 친구들처럼 많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난생처음으로 기타를 손에 잡아보게 됐다.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아끼고 아껴 종로에 나가 1만 5천원을 주고 베이스 기타를 샀는데 너무 좋아 신주단지 모시듯 품안에다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타에 마음을 두기 시작한 것은  TV에서 '들국화'의 연주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전인권이 긴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며 절규하듯 노래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었다. 난 이때부터 기타를 갖고 싶어 아버지가 주신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던 것이다. 나는 기타를 산 후 틈만 나면 집에 틀어박혀 기타연주를 독학했다. 기타 교본을 있는대로 구입해다 놓고 손톱이 갈라질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음악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배워 본 일이 없다. 기타를 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구해다 놓고 연구하고 수없이 많은 반복과 실험을 통해 이치를 터득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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