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자서전 1. 유년기

Posted by RAY.D
2014. 11. 7. 22:47 뮤지션 이야기/국내

얼마전에 서태지에 대한 글을 쓰다가

 

옛날에 서태지 자서전(이라기 보단 스포츠 신문에 올라왔던 그의 본인이 전하는 본인의 살아온 이야기) 에 대한 언급을 했었다.

 

그 원문을 잃어버려서 남은 기억만으로 몇자 언급했었는데,

 

최근 집을 이사하면서 그 잃어버린 종이조가리(예전에 A4에 출력해둔 것)을 찾아냈다.

 

다시 종이를 잃어버려도 상관없도록 그 기록을 디지털로 남겨두려고 한다.

 

서태지가 21살때니까 20년도 넘은 글인데, 본인이나 신문사에서 태클걸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저작권이나 그런걸 주장하려면 원작자인 본인이 직접 찾아와주길 바란다..제발;;

 

한번에 다 올리긴 힘드니 (A4 가득채워서 13장이나 된다...) 나눠서 종종 올린다.

 

 

 

비몽사몽 요즘의 내 생활을 한마디로 줄여 표현한다면 이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케줄에 쫓기다 보니 잠이 부족해 승용차 안에서 잠을 자기 일쑤요 틈만 나면 나도 몰래 두 눈이 스르르 잠긴다. 말하자면 행동의 절반쯤이 잠에 취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인기 자체도 실감이 안 난다. 바로 엊그제까지 무명 음악인이었던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됐는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내가 클 때와는 크게 다른 것 같다. 이쪽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개의치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만다. 한번 붙잡히면 아무리 바쁘다고 통사정(?)을 해도 좀처럼 놓아 주는 법이 없다. 또 팬들 중엔 만날 때마다 몇 장씩 사인을 해달라고 졸라 그렇지 않아도 바쁜 시간을 빼앗아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처음엔 이 같은 팬들의 성화가 신경질을 나게도 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너그럽게 받아넘기곤 한다. 아직 어린 나이여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때 더욱 겸손해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스타도 결국 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은 무조건 현실과는 동떨어진 동화 속의 왕자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만났을 때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스포츠서울의 지면을 빌어 내가 살아온 스물 한 해의 짧은 삶을 고백하려한다. 사실 그 동안 내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팬들이 적잖았다. 그들은 편지로 또는 전화로 많은 것을 물어왔지만 난 의식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단편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인 것을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그 전체적인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내 본명은 정현철(鄭鉉哲). 1972221일 서울 종로구 가희동에서 아버지 정상규씨(53)와 어머니 강명숙(51)사이에서 11녀중 두번째로 태어났다. 우리집안은 조상 대대로 서울서 살아온 토박이로 할아버지 정희석씨는 연대 음대 학장을 지냈으며 국내에서 오케스트라를 맨 처음 만든 음악가였다. 당시 아버지는 옷가지들에 붙이는 상표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셨는데 집안 형편은 중간 정도였다. 원래 중소기업이란 잘될 때도 있었지만 어려울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성격이 불 같았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무척 엄하게 다루었다. 난 상당히 귀한 아들이었는데 조그마한 잘못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매 안 맞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까. 대신 누나 혜원(23 여대4)은 너무나 성격이 얌전하고 재치가 있어 꾸지람 한번들은 일이 없었다. 반면 어머니 성격은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께서 꾸지람이라도 듣는 날엔 마치 자신이 그런 것처럼 안쓰러워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낳으실 때 큰 해를 삼키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바다가 아스라이 내려와 보이는 강둑에 서서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그대로 삼켰다는 것인데 길몽을 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 때문에 어머니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집안 식구들에게 태몽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집 옆에 있는 재동유치원에 들어갔다. 너무 개구쟁이 짓을 많이 하자 어머니가 서둘러 유치원에 넣은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툭하면 누나와 싸우는 바람에 애를 끊였다. 나는 순위 누나지만 한치도 양보하는 법이 없이 누나와 사사건건 맞붙었다. 특히 용돈과 TV채널 문제는 우리 두 사람간의 가장 큰 분쟁원인이었다. 누나가 KTV를 보고 있으면 난 꼭 MTV를 고집했다. 두 사람이 맞붙어 싸우다가 아버지에게 혼이 날 때도 많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럭저럭 유치원을 졸업하고 난 7살이 되던 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재동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남보다 한살이 적은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것은 생일이 2월달 이었기 때문이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아줌마였는데 유난히 자상한 분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애들이 개구쟁이 짓을 하면 조용히 웃는 얼굴로 타이를 뿐 좀처럼 매를 드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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